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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026의 게시물 표시

대한해협을 잇는 영산강과 규슈의 한일 고대사 해양 네트워크

오늘날 한국과 일본을 가르는 바다는 현대적 국경선에 의해 단절된 공간으로 여겨지기 쉽지만, 고대의 한일 바다는 장벽이 아니었다. 장한식 저자의 [한일 고대사의 재건축 3권, 열도의 내전과 영산강 전방후원분의 비밀]은 1권의 '이름의 이동'과 2권의 '힘의 이동'을 거쳐, 그 이동과 충돌이 빚어낸 '패권의 이동'을 본격적으로 추적하는 완결편이다. 저자는 역사 속에 묻혀 있던 두 명의 잊힌 주인공, 즉 일본열도 규슈의 독자적 정치세력과 한반도 남부의 영산강 정치체를 역사의 전면으로 불러내며 고대 해양 네트워크의 숨은 역학을 명쾌하게 복원해 낸다. 흥미진진한 여정의 첫 출발점은 바다 건너 규슈다. 기존의 통념은 일본 고대사의 정치적 중심이 처음부터 나라와 오사카를 아우르는 기나이 지역에 자리 잡고 있었을 것으로 전제하곤 한다. 그러나 책은 초기 일본 고대사의 중심이 규슈에 있었으며, 그곳에 독자적인 정치세력이 실존했다는 가설을 제시한다. 저자는 오래된 야마타이국 위치 논쟁에서 규슈설에 무게를 두며, 야마타이국 이후에도 규슈의 독자 세력이 기나이의 새로운 세력과 치열한 패권을 겨루었다고 분석한다. 숭신왕조의 등장과 열도 평정, 고분시대의 시작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은 규슈 중심에서 기나이 중심으로 힘이 이동해 가는 역동적인 정치적 경쟁의 역사였다. 일본열도의 새로운 격변은 열도 내부만의 사건으로 완결되지 않는다. 시선을 바다 건너 한반도로 돌리면, 영산강 유역에는 앞은 네모지고 뒤는 둥근 일본 특유의 무덤 형태인 전방후원분이 자리하고 있다. 일본 고분시대를 대표하는 묘제가 왜 영산강 유역에 나타났는가라는 문제는 오랫동안 한일 고대사학계의 민감한 쟁점이었다. 저자는 무덤의 유사성을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지배나 종속으로 해석하는 기존의 도식을 거부한다. 대신 신미제국과 침미다례 기록, 고분문화를 검토하며 영산강 유역을 백제의 단순한 변방이 아닌 자율성을 지닌 독자적 영산강 정치체로 새롭게 규정한다. 여기에서 규슈와 영산강 세력...

대한해협을 함께 건넌 한일 고대사의 기마족과 해인족

고대 동아시아의 바다는 단절의 장벽이 아닌, 사람과 문화가 교차하는 통로였다. 장한식 저자의 [한일 고대사의 재건축 2권, 기마족의 신라·가야·열도 정복사]는 한반도 남부와 일본열도의 정치 지형을 흔들었던 힘(power)의 이동을 추적하는 역사서다. 저자는 고대사의 변화를 고정된 국경선이 아닌 역동적인 사람들의 이동과 융합이라는 관점에서 새롭게 재구성한다. 특히 대륙을 질주하던 북방 기마세력과 남해안의 물길을 지배하던 해양세력이 어떻게 하나로 융합되어 대한해협을 건너갔는가는 이 힘의 대이동을 이해하는 핵심적인 열쇠다. 역동적인 서사의 출발점은 4세기 한반도 남부에서 발견되는 급격한 고고학적 격변이다. 경주 일대에서 이전 시기에는 볼 수 없었던 거대한 적석목곽분이 출현하고, 그 내부에서 화려한 금관과 허리띠 장식, 다량의 마구류가 출토된 것이다. 저자는 독특한 북방식 문화의 원류를 중앙아시아의 쿠르간과 중국 북방 유목 지대로 연결하며 대담한 질문을 던진다. 고구려와의 전쟁 속에서 남하한 모용선비 일파가 동해안 이동로를 타고 신라 지역까지 진출하여 정치 구조의 변화를 이끌었을 가능성이다. 기마세력의 영향력은 신라를 넘어 가야로도 이어졌다. 김해 대성동고분군과 아라가야 마갑총의 마갑 등은 기마유목민 집단이 직접 가야 정치 구조의 격변과 분화에 깊이 관여했음을 보여주는 실질적 증거로 해석된다. 그러나 광활한 평원을 달리던 육지의 전사들이 한반도 남부라는 지리적 한계에 부딪혔을 때, 이들의 이동은 일시적으로 멈추는 듯했다. 기마 전사들에게 한반도 남단의 거친 바다는 육지와는 전혀 다른 미지의 장벽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역사적으로 흥미로운 융합이 일어난다. 대륙의 평원을 달리던 기마족의 강력한 육지 힘이 한반도 남부 해안에서 배를 띄우고 교역을 다스리던 해양세력, 즉 바다에 익숙한 집단과 만난 것이다. 평원을 누비던 기마병들이 대한해협의 거친 파도를 넘기 위해 해양 집단의 항해 기술에 의존하게 되면서 두 집단의 동맹이 실현되었다. 육지의 정복력과 바다의 기동성이 결합...

대한해협을 공동 생활권으로 삼은 한일 고대사의 바다 사람들

오늘날 한국과 일본을 가르는 대한해협은 높은 장벽이자 삼엄한 국경선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국가와 민족이라는 현대적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던 고대로 시선을 돌리면, 이 바다는 전혀 다른 역동적인 공간으로 다가온다. 장한식 저자의 [한일 고대사의 재건축 1권, 왜와 임나의 진실]은 고대 대한해협이 지금처럼 양국을 가르는 장벽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고대의 바다는 철과 기술, 그리고 사람과 물자가 끊임없이 교류하던 하나의 해상 고속도로이자 공동의 생활공간이었다. 이러한 관점의 전환 속에서 우리는 고대 한일 관계사의 가장 뜨거운 쟁점인 왜(倭)와 임나(任那)의 진짜 실체를 마주하게 된다. 기존의 역사관은 왜를 일본열도라는 특정 공간에 처음부터 고정되어 존재했던 정치 세력으로 전제하곤 한다. 그러나 고대 기록을 면밀히 검토하면 고대 왜의 초기 활동 공간은 일본열도가 아니었다. 저자는 농경을 중심으로 살아가던 내륙 사람들과 구별되는 독특한 해양 집단에 주목한다. 한반도 남부의 길고 복잡한 해안선을 따라 살아가며 고기잡이와 항해, 교역을 했던 이들을 해인족(海人族)이라는 개념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이 해인족이야말로 초기 '왜'의 주체이자 역사적 주체였다. 한반도왜가 한반도 남부에서 활발하게 움직였다는 단서는 역사 기록과 설화 속에서 충분히 찾을 수 있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신라 호공(瓠公)의 행적을 비롯해, 세오녀와 연오랑 설화, 한반도 남부 해상에서 벌어진 포상팔국 전쟁 등은 한반도왜의 발자취를 담고 있다. 이 해양 집단은 시대의 변화와 농경의 확산 속에서 점차 대한해협을 건너가게 된다. 해인족 세력이 대규모로 바다를 건너 이동하면서, 비로소 우리가 흔히 아는 일본열도의 왜, 즉 열도왜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게 된 것이다. 왜는 처음부터 열도에 박제되어 있던 존재가 아니라, 대한해협을 거침없이 넘나들며 중심지를 이동시켰던 유동적인 역사적 주체였다. 이러한 해양 네트워크적 시각은 역사적 갈등이 첨예한 임나의 실체 또한 새롭게 정립한다. 저자는 임나를 고정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