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한국과 일본을 가르는 대한해협은 높은 장벽이자 삼엄한 국경선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국가와 민족이라는 현대적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던 고대로 시선을 돌리면, 이 바다는 전혀 다른 역동적인 공간으로 다가온다. 장한식 저자의 [한일 고대사의 재건축 1권, 왜와 임나의 진실]은 고대 대한해협이 지금처럼 양국을 가르는 장벽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고대의 바다는 철과 기술, 그리고 사람과 물자가 끊임없이 교류하던 하나의 해상 고속도로이자 공동의 생활공간이었다. 이러한 관점의 전환 속에서 우리는 고대 한일 관계사의 가장 뜨거운 쟁점인 왜(倭)와 임나(任那)의 진짜 실체를 마주하게 된다.
기존의 역사관은 왜를 일본열도라는 특정 공간에 처음부터 고정되어 존재했던 정치 세력으로 전제하곤 한다. 그러나 고대 기록을 면밀히 검토하면 고대 왜의 초기 활동 공간은 일본열도가 아니었다. 저자는 농경을 중심으로 살아가던 내륙 사람들과 구별되는 독특한 해양 집단에 주목한다. 한반도 남부의 길고 복잡한 해안선을 따라 살아가며 고기잡이와 항해, 교역을 했던 이들을 해인족(海人族)이라는 개념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이 해인족이야말로 초기 '왜'의 주체이자 역사적 주체였다.
한반도왜가 한반도 남부에서 활발하게 움직였다는 단서는 역사 기록과 설화 속에서 충분히 찾을 수 있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신라 호공(瓠公)의 행적을 비롯해, 세오녀와 연오랑 설화, 한반도 남부 해상에서 벌어진 포상팔국 전쟁 등은 한반도왜의 발자취를 담고 있다. 이 해양 집단은 시대의 변화와 농경의 확산 속에서 점차 대한해협을 건너가게 된다. 해인족 세력이 대규모로 바다를 건너 이동하면서, 비로소 우리가 흔히 아는 일본열도의 왜, 즉 열도왜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게 된 것이다. 왜는 처음부터 열도에 박제되어 있던 존재가 아니라, 대한해협을 거침없이 넘나들며 중심지를 이동시켰던 유동적인 역사적 주체였다.
이러한 해양 네트워크적 시각은 역사적 갈등이 첨예한 임나의 실체 또한 새롭게 정립한다. 저자는 임나를 고정된 영토나 국가명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다양한 역사 사료 속 임나의 용례를 분석하여 최초임나=초기왜=초기가야라는 대담한 가설을 전개한다. 이는 고대 한반도 남부와 가야, 그리고 초기 왜가 동일한 역사적 뿌리를 공유하고 있었음을 증명한다. 아울러 고대 일본이 한반도를 지배했다는 식민주의 사관인 임나일본부설의 허구성을 짚어내고, 일본서기에 나타난 갈등 양상을 분석하여 임나일본부라는 존재의 실체와 파견 주체를 새롭고 입체적인 시각으로 재구성한다.
역설적으로 대한해협을 둘러싸고 형성되었던 고대 바다 사람들의 역동적인 삶과 이동의 궤적은, 현대의 좁은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의 틀 속에 갇혀 있던 한일 고대사의 수수께끼를 해결해 주는 열쇠가 된다. 고대 동아시아의 바다를 하나의 통일된 공동 생활권으로 바라볼 때, 우리는 익숙한 이름을 낯설게 질문하며 역사적 진실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 역사원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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