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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지의 시크릿 미션


461년, 백제.

바다는 거칠었다. 검은 파도가 뱃전을 때렸다. 배가 크게 기울 때마다 사람들의 얼굴이 굳었다. 그러나 곤지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의 뒤에는 백제가 있었다. 앞에는 왜가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반드시 완수해야 할 임무가 놓여 있었다.

곤지는 개로왕의 동생이었다. 왕자였다. 하지만 지금 그에게 왕자의 지위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백제는 흔들리고 있었다. 북쪽에서는 고구려 장수왕이 압박해 왔고, 내부에서는 왕권과 여러 세력이 충돌하고 있었다. 잘못하면 나라가 무너질 수도 있었다.

곤지는 바다를 건너야 했다. 왜의 세력을 만나고, 그들의 힘을 움직여 백제를 살릴 길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였을까.

아니었다. 누구도 기록하지 않은 또 하나의 임무가 있었다. 곤지의 시크릿 미션이었다.

거친 바다를 건너는 도중 한 아이가 태어났다. 훗날 백제의 왕이 될 무령왕이었다. 당시 곤지는 알지 못했다. 이 작은 생명이 자라서 백제와 일본의 역사를 다시 이어 놓게 되리라는 것을. 기록에 따르면 곤지는 461년 대한해협을 건넜고, 그 과정에서 무령왕이 태어났다. 

곤지는 멈추지 않았다. 규슈를 지나고, 다시 바다를 건넜다. 사람을 만났다. 세력을 살폈다. 적인지 동지인지 알 수 없는 이들의 눈빛을 읽었다.

가쓰라기. 기이. 오우미. 미와. 그리고 가와치.

가는 곳마다 한반도에서 건너온 사람들의 흔적이 나타났다. 흩어져 있던 그 흔적들은 하나의 길처럼 이어졌다. [곤지의 시크릿 미션]은 한반도에서 규슈를 거쳐 혼슈와 기나이 지역으로 이어지는 곤지의 이동 경로를 현지 답사와 사료를 통해 추적한다. 

곤지는 그 길 위에서 사람을 모았다. 힘을 연결했다. 백제를 살려야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1년.
5년.
10년.
그리고 475년.

비보가 날아왔다. 한성이 무너졌다. 고구려 장수왕의 군대가 백제의 수도를 공격했다. 형 개로왕은 죽었다. 한성백제는 끝났다. 곤지는 말을 잃었다. 16년 동안 바다 건너에서 지켜 온 나라였다. 목숨을 걸고 살리려 했던 나라였다.

백제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곤지는 다시 바다를 건넜다. 이번에는 왜로 향하는 길이 아니었다. 백제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새로운 수도 웅진에서 살아남은 나라를 다시 세워야 했다. 그는 백제로 돌아와 좌평이 되었다. 

그러나 곤지에게 남은 시간은 길지 않았다.

477년.

그는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그의 후계자들이 남았다.

동성왕.
그리고 무령왕.

두 사람은 백제의 왕이 되었다. 곤지는 두 백제 왕의 혈연적, 정치적 후원자였으며, 위기에 빠진 백제를 위해 외교관으로 활동하고 고대 일본의 왕권 형성에도 영향을 미친 인물로 [곤지의 시크릿 미션]에서 조명된다. 

더 놀라운 것은 그다음이다. 곤지가 죽은 뒤에도 그의 이름은 사라지지 않았다. 바다 건너 일본 오사카의 아스카 마을. 그곳의 아스카베 신사에서는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 백제 왕자를 신으로 모셔 왔다.

그 왕자가 바로 곤지였다. 

일본 사람들은 백제의 왕자를 왜 그토록 오랫동안 기억했을까.
곤지는 일본에서 16년 동안 무엇을 했을까.
그에게 주어진 진짜 임무는 무엇이었을까.

[곤지의 시크릿 미션]은 이 수수께끼를 좇는다. 저자 양형은은 10여 년 동안 한반도와 일본 곳곳의 유적 수백 곳을 직접 답사하고, 사료와 유물, 지명과 이동 경로를 하나씩 맞춰 가며 곤지의 숨겨진 행적을 추적한다. 

1,500년 전.

한 왕자가 나라를 구하기 위해 바다를 건넜다. 그가 지나간 길에는 백제의 흔적이 남았고, 그의 이름은 일본의 한 신사에서 신이 되어 살아남았다. 그리고 지금도 질문은 남아 있다.

곤지가 목숨을 걸고 수행했던 마지막 임무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 비밀을 따라가는 독자는 백제와 일본 사이에 숨겨진 5세기의 한일고대사를 만나게 된다. © 역사원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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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왕자 곤지는 누구인가? - [곤지의 시크릿 미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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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일본의 신이 된 백제 왕자 곤지, 그의 발자취를 따라간 20여 년의 여정 - [곤지의 시크릿 미션]를 출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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