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고대 일본의 신이 된 백제 왕자 곤지, 그의 발자취를 따라간 20여 년의 여정 - [곤지의 시크릿 미션]를 출간하다

고대 일본에서 신이 된 백제 왕자가 있다. 일본의 한 신사에서는 1,50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그를 모셔 왔다. 그는 백제 개로왕의 동생이자 동성왕과 무령왕의 아버지, 그리고 외교관이었던 부여곤지다. 곤지는 5세기 한일 고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인물이지만, 역사 전공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낯선 이름이다.

산수야 출판사에서 출간한 [곤지 시크릿 미션]의 양형은 저자가 곤지라는 인물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한 전철역 이름이었다. 20년 넘게 일본 오사카에서 살아왔던 그는, 어느 날 자주 보아 왔던 ‘가와치코사카’라는 역 이름에 포함된 ‘가와치’라는 지명에 호기심이 들었다.

자료를 찾아보니 ‘가와치’는 지금의 오사카부 동부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수수께끼투성이인 5세기 일본 고대사와 연관이 있다고 했다. 그 이야기에 호기심이 커져 도서관에서 책들을 뒤져 보다가 ‘곤지’라는 낯선 이름을 발견했다.

곤지는 5세기 말 백제에서 일본에 외교관으로 파견되어 활약한 인물이었다. 5세기 한일 고대사의 수수께끼를 풀 열쇠는 바로 곤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부터 곤지를 향한 여정을 시작했다. 곤지에 관한 역사를 찾는 데 그치지 않고, 거기서 더 나아가 고대의 곤지가 현대의 한일 두 나라에서 지니는 의미를 모색했다. [곤지의 시크릿 미션]은 10년이 넘는 그 오랜 여정의 기록이다. © 산수야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수수께끼의 5세기 한일 고대사 비밀을 간직한 역사 인물, 곤지의 시크릿 미션

고대 일본에서 1,500년 넘게 신으로 모셔져 온 백제 왕자가 있다. 그는 백제 개로왕의 동생이자 동성왕과 무령왕의 아버지, 그리고 일본에 파견된 외교관 부여곤지다. 곤지는 5세기 한일 고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지만, 그의 이름은 오늘날 우리에게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렇다면 왜 일본은 한 백제 왕자를 1,500년 동안 신으로 기억해 왔을까. 양형은 저자의 책 [곤지의 시크릿 미션]은 이 질문에서 시작한다. 오사카에서 20년 넘게 생활한 저자는 우연히 전철역 이름 ‘가와치코사카’에서 ‘가와치’라는 지명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자료를 추적하던 끝에 ‘곤지’라는 이름을 발견한다. 그 순간부터 20여 년 동안 한반도와 일본을 오가며 수백 곳의 유적과 신사, 고분을 직접 답사하고, 고대 기록과 유물을 대조하며 그의 행적을 추적했다. 산수야 출판사의 책 [곤지의 시크릿 미션]은 한 역사 인물을 찾아가는 여정을 넘어, 5세기 한일 고대사의 퍼즐을 하나씩 맞춰 가는 흥미로운 역사 탐사기다. [곤지의 시크릿 미션]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고대 사료를 통해 곤지의 삶과 역사적 역할을 살펴보고, 2부에서는 저자의 현장 답사를 바탕으로 곤지가 지나갔을 것으로 추정되는 여정을 복원한다. 마지막 3부에서는 곤지를 매개로 이어지고 있는 한일 교류 프로젝트를 소개한다. 특히 저자는 곤지의 발자취를 따라 한반도와 일본 곳곳의 유적 수백 곳을 직접 답사하고 한반도의 영향이 보이는 유물들을 눈으로 확인했다. 저자가 직접 찍은 일본 현지의 사진들은 현장감을 더하고, 직접 제작한 지도들은 독자들이 1,500년 전 곤지의 여정을 함께 따라갈 수 있도록 안내한다. 곤지가 수행한 ‘시크릿 미션’은 과연 무엇일까? 곤지가 활동하던 당시 백제는 고구려의 대규모 공세와 왕권 중심 체제에 대한 내부의 반발로 내우외환을 겪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곤지는 일본의 지원을 이끌어 내기 위해 바다를 건넜지만, 그의 역할은 단순한 외교 사절이 아니었다. 그는 무려 16년 동안 일본에 머물면서 ...

바다를 건너 역사를 바꾼 백제 왕자, 그 잊힌 여정을 찾아서 - [곤지의 시크릿 미션]

역사는 때로 한 사람의 발걸음으로 새로운 방향을 맞이한다. 그러나 그 발걸음이 기록 속에서 희미해질 때도 있다. [곤지의 시크릿 미션]은 바로 그런 한 사람, 백제 왕자 곤지(昆支)의 삶을 추적하는 역사 기행서다. 많은 사람들은 백제와 일본의 관계를 이야기할 때 왕인 박사나 칠지도를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정작 일본에서 1,5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특별한 존경을 받아온 백제 왕자 곤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이 책은 “왜 일본은 백제 왕자를 신처럼 모셨을까?”라는 하나의 질문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그 질문을 따라 독자는 백제의 역사와 일본 고대사의 결정적인 순간을 함께 여행한다. 5세기 말, 백제는 고구려의 압박과 내부의 혼란 속에서 존망의 갈림길에 서 있었다. 그 시기에 왕자 곤지는 일본으로 향한다. 그의 여정은 단순한 외교 사절의 방문이 아니었다. 그는 개로왕의 왕비를 보호하며 바다를 건너고, 일본에서 16년이라는 긴 시간을 보내며 동아시아의 역사를 바꾸는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된다. [곤지의 시크릿 미션]은 이처럼 기록 속에 흩어져 있는 단서들을 하나씩 이어 붙이며, 오랫동안 풀리지 않았던 한일고대사의 퍼즐을 독자 앞에 펼쳐 놓는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역사와 탐험이 함께하는 구성이다. 저자는 20여 년 동안 공주와 부여는 물론 일본 오사카, 아스카, 규슈 등 백제와 깊은 관련이 있는 유적지를 직접 답사하였다. 수백 곳의 현장을 발로 찾아다니며 고고학 자료와 문헌 기록, 현장 지형을 서로 대조하고 검토하였다. 그 과정에서 독자는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읽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곤지의 발자취를 따라 함께 여행하는 듯한 생생한 경험을 하게 된다. 특히 책에는 곤지와 그의 일행이 이동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항로와 이동 경로가 지도와 함께 제시되어 있어, 백제와 일본을 연결했던 바닷길을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반도와 일본 열도가 단절된 공간이 아니라 활발한 문화와 사람이 오가던 하나의 생활권이었다는 사실도 자연스럽게 깨닫는다. [곤지의 시크...

백제 왕자 곤지는 누구인가? - [곤지의 시크릿 미션]

한국 고대사에서 부여곤지(扶餘昆支)라는 이름은 그리 익숙하지 않다. 근초고왕이나 개로왕, 무령왕처럼 역사 교과서에서 자주 만나는 인물도 아니다. 그러나 5세기 후반 백제와 왜의 관계를 살펴보다 보면 곤지라는 이름을 여러 차례 만나게 된다. 잊힌 백제 왕자의 이름 곤지는 백제 왕실의 인물이었다. 그의 정확한 계보에 대해서는 사료마다 기록이 다르지만, 일본서기는 개로왕의 아우로 전한다. 461년 그는 바다를 건너 왜로 향했다. 당시 백제는 고구려의 압박이 거세지는 가운데 대외 관계를 안정시키고 새로운 활로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곤지가 왜로 향한 정확한 목적을 오늘날 모두 알 수는 없다. 다만 당시 백제와 왜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그의 도왜가 양국 관계와 관련된 중요한 정치·외교적 행보였다고 볼 여지는 충분하다. 461년, 바다를 건너다 곤지의 도왜 과정에는 훗날 백제사의 중요한 인물이 되는 무령왕과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진다. 일본서기에 인용된 기록에 따르면 개로왕은 임신한 자신의 부인을 곤지와 함께 보내면서, 항해 도중 아이를 낳으면 다시 돌려보내라고 당부했다. 이후 규슈 북서쪽의 섬에서 아이가 태어났고, 이 아이가 훗날 무령왕이 되는 사마였다고 전해진다. 곤지는 이후 왜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오늘날 오사카 동부의 가와치 지역에는 곤지와 그의 후손에 관한 전승이 남아 있다. 신찬성씨록은 이 지역에서 활동했던 아스카베노 미야쓰코 계통을 곤지와 연결한다. 이러한 기록은 곤지와 그 후손들이 고대 일본의 도래계 씨족 형성 과정에서 일정한 역할을 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백제로 돌아온 곤지 475년 백제에는 큰 변화가 일어났다.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으로 한성이 함락되고 개로왕이 죽었다. 백제는 수도를 웅진, 지금의 공주로 옮겼다. 새로운 수도에서 나라를 수습하는 일이 시급했다. 곤지가 다시 백제 정치의 중심에 등장한다. 삼국사기는 477년 4월 문주왕이 곤지를 내신좌평에 임명했다고 기록한다. 내신좌평은 왕실과 중앙 정치에서 ...